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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록/한국사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1(한국사,고려,현종,미래,거란군,경험,습관,강감찬 장군)

by 새싹미녀 2016. 7. 4.

  결정적인 순간의 확실한 표현

 

 

 

  알 수 없는 미래를 위해 대비하는 것은 습관 되어 있어야 한다. 언제 어디에서 터질 것이 사고이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곳에는 습관이 드러나게 되어 있다. 또 경험이 없으면 기습도 기습을 예상하는 일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경험을 하게 되면 습관은 자연스레 물들게 되어있다.

 

  강감찬 장군의 아이디어인지는 모르겠지만 고려 장군들의 경험으로 짐작이라는 것을 했기 때문에 거란군의 끝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거란군을 볼 때 욕심 부린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거란군도 우리가 욕심 부리는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사람은 다 똑같기 때문에 조금 달라진다고 해서 티가 나질 않는다. 확실하게 다르다라는 것을 보여줄 때 차이가 크게 보여줘야 한다.

 

  거란군이 물러난 뒤 고려는 임금이 나라를 다스리지 않았다. 현종의 와병을 핑계로 거부했다. 이는 고려의 국권이 달린 문제였기 때문에 외교로 끝내 굴복을 거부한 것이었다. 그러자 거란은 다시 강동 6주의 반환을 요구했다. 고려는 한 번도 확보한 전략적 거점을 내줄 수 없었었다. 고려는 1014년 송의 사신을 보내 국교 재개를 요청했다. 다음해에도 사신을 보내서 유사시에 군을 보내줄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거란과 외교적 관계를 중단하는 의미에서 거란의 연호대신 송의 연호를 사용했다.

고려의 이러한 일련의 조치에 대해 거란은 제 3차 전쟁을 개시했다. 1014년 현종 5년부터 1019년 현종 10년까지 네 차례의 대격돌이 있었던 제 3차 전쟁에서 고려가 완승을 얻었다. 이중 가장 큰 전투 소배압이 10만 군대를 이끌고 온 10183차 침입이었다. 고구려정부에서는 이미 거란이 밀려올 것을 대비해 20만 병력을 준비해 둔 상태였다. 소배압의 10만 대군은 개경을 공격했지만 실패했고, 뒤로 물러나면서 강감찬 장군이 이끄는 주력부대에 포획되어 불과 수천 명의 병사만 살아 돌아갔다. 101921일에 벌어진 전투가 그 유명한 귀주대첩이다.

 

(출처, 문화콘텐츠닷컴/문화원형백과)

 

  에드먼드 버크는 영국의 정치가이자 정치사상가다.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났고, ‘자연사회의 옹호라는 책을 1756년에 냈다. 그 외의 책들 숭고와 미의 관념의 기원’ 1757년에 저술한 것이 있다. 이렇게 저술가로서 알려졌고, 그 후에 정치가가 된다. 휘그당의 당수로 총리인 로킹엄의 비서를 거쳐 1765년부터 1794년까지 하원의원을 지내게 된다. 그는 힘보다는 인내심으로 더 많은 일을 이룰 수 있다.”고 했고, 인내하는 일은 많은 일을 이루게 해준다고 하면서 힘만 갖어선 아무것도 못한다고 말했다. 민주주의 같은 경우 국민의 마음에 들어야 국회의원이든 대통령이든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확실한 차이를 보여줄 때에 결정적인 순간에 보여줘야 효과가 좋다. 그리고, 미래를 대비할 때에도 계획적이지 않으면 인내심이 많아도, 타이밍이 맞지 않을 때가 많다. 시간을 쫓아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쫓아갈 때에 내가 알아서 타이밍을 맞추자. 시간을 역전해서 살아가고 싶다면 대비하자. 대비는 전쟁뿐만 아니라 어느 곳에도 사용가능하다.